오 주여, 들으소서!

기도의 사람 다니엘


어두운
풍운이 세상을 감돌고 있습니다
. 공포와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테러와 불법이 난무하고, 조직적으로 은밀한 파괴적 세력들이 힘을 더해 가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는 더욱 무시무시하게 종말로 치닫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고난 당하는 백성을 보는 것은 하나님께 고통입니다. 거의 모든 나라와 모든 지역에 걸쳐서 잇따라 일어나는 재난을 통하여, 불신자들조차도 재앙의 원인은 사람들의 죄악 까닭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명백한 하나님의 심판의 전조들을 보면서도,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미움이 수그러들지 않고 어디를 보든 살인과 폭동, 전쟁 들이 기승을 부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두려움과 고난 속에 빠져 들어가도록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어떤 길로 우리를 도우실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너는 환난 날에 나에게 부르짖어라. 내가 너를 구할 것이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50:15). 하나님의 눈은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지켜보십니다. 주님의 마음은 우리를 도우실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두려워하는 우리를 지켜주시고,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와 함께 고난을 당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긴장이 더욱 고조되는 상황 속의 우리 나라를 바라보며,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옳을까요? 다니엘의 기도는 (다니엘 9, 서식 p 6-7 참조)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도달할 보여 줍니다. 민족의 존망이 달려있던 상황 아래에서 드려졌던 기도는, 지금 비슷한 상황 아래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다니엘은 자기 민족이 지은 죄의 결과로 임한 재앙과 앞으로도 임할 재난에 대한 계시 앞에서, 아주 충격을 받았습니다. 충격 속에서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행하기를 바라시는 것을 행합니다. 이상 자신의 생각이나 기분이 현재의 상황에 사로잡혀 짓눌리지 않도록 내가 하나님께 결심하고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을 전환시킵니다.

그리고 기도가 응답되기에 합당한 자세로 마음을 다잡고, 간구합니다. 다니엘이 가졌던 이런 내면의 자세는 우리로 부끄러움을 갖게 합니다.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기도하고 간구하는 으로 다니엘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 안에 참회의 마음이 가득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자기 민족의 죄를 인정하며, 죄를 자신의 죄로 고백합니다. 조금도 ? 라고 묻지 않으면서, 겸손히 징계 아래 엎드립니다. 능력있는 기도의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과 자기 백성에게 놓여 있는 진실을 인식 하였습니다. 우리의 죄가 원인이라.

이와같이 우리도 양심의 거울 앞에 서서, 언제 어디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렸는지 물으며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항상 진실을 말해왔는가?

나는 다른 사람을 시기하거나, 그가 가진 것을 욕심내지 않았는가?

이성과의 관계를 나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두었는가? 부부관계에서도 역시 마음의 순전함과 거룩함까지 지켜왔는가?

삶의 환경에 부정하고 저속한 것들을 허용한 적이 없는가?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살해하는 낙태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예수님이나 하나님 아버지가 모욕당하실 나는 무관심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부모님 또는 상사들과 동료들에게 반항적이지는 않는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다툼이나 미움과 원망 속에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실 없도록, 나는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그의 부정적인 면을 다른 사람에게 소문내지는 않는가?

누군가를 속이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선물인 , 건강,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사람을 의지 하며, 그에게 더욱 얽매여 있지는 않는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오히려 그런 일을 책망하십시오 (5:11).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말씀대로 죄를 끊지 못하고 나오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의 비추임 아래에서 이같이 우리를 살피면 다니엘 처럼 자백하게 것입니다. 우리는( 나도) 범죄하였고 불의를 행하였으며 주의 명령을 거역하였습니다우리는 수치를 당해 마땅합니다. 그러면 다니엘처럼 우리도 오직 웨칠 있을 것입니다. 주님, 우리는 죄를 범하여 수치를 당하나, 주님은 공의로우십니다 ( 9:7)“.

다니엘은 그렇게 기도할 있는 용기와 겸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이런 사람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어떤 어려움을 만나면 낙심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집니다. 주변 환경이나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기 민족을 괴롭히는 원수의 뒤에 있는 하나님의 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인정합니다. 재난은 나와 우리의 까닭입니다.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정직한 고백에 하나님의 마음이 열려집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해야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아무 도움을 얻지 못합니다. 계속되는 재앙을 멈추게 하거나, 재앙이 더하지 않도록 제방도 쌓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바닥에 엎드린 이들의 기도를 기다리십니다. 제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죄를 지었고 불의를 행했습니다.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이웃을 몸처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저를 괴롭히면 용서하는 대신 항상 계산하였고 뿌리를 품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사생활 하나님 앞에 드러내야 하고, 하나님의 내리시는 판단을 인정해야 합니다. 저는 다니엘처럼 깊이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과 같은 죄를 짓지는 않았으나, 저도 그들처럼 잘못 행하였으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그렇게 시인하고 돌이킬 ,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 아래 있게 됩니다.

! 곤궁의 시기에 우리가 재를 덮어쓰고회개하기 시작한다면하나님은 오직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벧전5:5). 우리와 민족을 위해 깊이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심각한 세대는 우리가 얼마나 바르게 기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소리로 우리를 부르시는 같습니다. 기도하라, 언젠가 나의 다니엘이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하라! 역시 참으로 너희를 도와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기 원한다.

제사장 같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가?

다니엘의 기도에는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는 입니다. 그의 기도는 자신을 희생하여 드리는 제사장적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 이신( 53:7)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모습에는 주님의 가장 깊은 성품, 끝없는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제단에 올려놓아 스스로 희생하셨을까요? 죄와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주고 사려는 것뿐만 아니라, 택하신 민족으로, 성령 안에서 영의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벧전 2:5-9). 예수님이 희생양이 되셨으니, 그분을 따르기 원하는 제자들이 희생의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없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버리지 않거나 자기 부모를 사랑하는 자나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없다 ( 10:37-39; 16:24; 9:24; 14:26, 33). 희생이 없다면 주께 속한 자가 아니요, 주님의 참된 제자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가장 일은 말과 전능한 행사와 기적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골고다에서의 희생을 통해서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동일한 영적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예수님을 위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산제물이 되어 드려지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 ( 12:1).

산제물 되어 드려지는 일은 누구라도 있습니다. 육신적인 것들, 정신적 만족감 혹은 혼적 즐거움, 사랑, 명예, 주목받기 등의 욕구를 포기하는 이런 작은 일에서 시작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당한 위협과 파멸 앞에서, 이런 것들을 포기하려 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진지하며 절박한 지를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심판을 멈추기 위해 우리가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후일 얼마나 자신을 책망하게 되겠습니까?

이런 저런 영역들이 사탄에 의해서 빠르게 차례로 점령되어가고 있습니다. 상황에서 주님과 함께 사탄의 악한 궤계를 멈추게 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할 영혼을 주님은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주님의 능력은 희생에 담겨있고, 희생만이 열매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 우리에게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은 기도와 금식으로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부분에서 어떤 희생을 원하시는 지는 주님께서 개인적으로 알게 하실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려 오셨던 예수님,

새롭게 헌신합니다.

순종할 있는 은혜 내게 베풀어 주소서,

사람들로 나에게서 주님의 생명 보게 하소서.

생명 주께 드릴 있는

은혜 간구 합니다.

그런 희생 생명을 가져오며

부요한 영원의 씨앗 맺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바치신 예수님의 ,

찬양하기 원합니다.

모두에게 생명 주셨으니

우리 모두 주님을 끝없이 경배합니다.

나로 주님 닮게 하소서,

안에 사랑 태어나게 하소서.

베풀고 희생하는 사랑으로

하늘나라 만들게 하소서.

주님의 진실되고 온전한 희생,

위해 사셨고 죽으셨습니다.

또한 희생하는 되도록

주님 준비시켜 주소서.

사도바울은 제사장적 자세를 가진 생생한 증인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생명의 피를 제사 술처럼 따라 붓는다고 해도 나는 기뻐하고 (2:17)”,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것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고후12:15; 딤후2:10;4:6 참조)”. 교회사를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의 목숨과 영혼까지도 기꺼이 드릴 있었던 순교자들을 항상 찾으실 있었습니다. 무엇이 자신을 기꺼이 드리도록 했을까요? 그것은 분명 고행이 아니라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불타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를 끔찍하게 모욕하는 죄들로 말미암아 부패된 인류를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하실 것입니다. 왜냐면 회개가 일어나지 않을 피할 없는 심판이 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치루신 골고다 희생에 감사하는 우리는 이제 제사장의 마음으로 기꺼이 희생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희생을 힘입어 성령의 감동으로 자신을 희생할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희생은 순전하여 교만, 명예욕, 고집, 시기 또는 비판하는 영과 같은 다른 숨어있는 동기가 섞여 있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에서 비롯된 희생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마주 대하여 빛에 비추임으로 죄를 지적해 주실 있게 하는 참회로 가득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칼에 우리 민족과 백성이 걸려 있습니다. 멸망의 위험 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중보할 있는 우리의 희생이 요구됩니다.

중보기도하는 모임들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특별한 또는 밤을 잡아 제사장의 자세 자기 백성과 나라, 세상을 위해 기도합니다. 잠과 식사를 삼가고, 방송과 오락을 금하며, 편안함을 포기한채 드리는 그같은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도달합니다.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주님은 한탄 하셨습니다.: “성벽을 쌓고 내가 성을 멸망시키지 못하도록 성이 무너진 곳에 버티고 서서 나를 막을 의로운 사람을 찾았으나 나는 그런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22:30)”.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여 다가오는 멸망을 막으려는 사람도 발견하지 못하셨다니 얼마나 기막힌 하나님의 탄식이십니까!

절망적인 시대에 자신의 희생과 더불어 활력이 부어진 기도로 앞에 엎드리는 제사장적 기도자가 되어줄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다니엘은 이를 행한 제사장적 사람이었습니다. “… 막을 의로운 사람을 찾았으나하셨던 하나님의 간구와 탄식에 답변했으며, 그래서 내가 사람을 찾았다말씀하신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 오늘 주님의 부르심을 들읍시다.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영혼들이여 이제 일어나라!”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무르익어 있는 우리나라를 도울 자는 제사장적 기도자들일 것입니다. , 얼마나 책임이 우리 손에 쥐어져 있습니까?

희생의 위대한 능력 찬양 하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한없는 열매 가져오네.

주님의 음성 들으라:

누가 제물로 희생하나

사랑하여 선물하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기

백성의 죄와 자기의 죄를 묶어 겸손히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다니엘의 제사장적 자세가 그를 어디로 이끄는지 우리 어쩌면 감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하나님의 공의보다 크다 사실을 알게 줍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자기의 죄에 대한 아픔에 머물러 있지 않고, 나아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주는 자비로우시고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 9:9)”. 그렇습니다. 사실처럼 위로가 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 주님과의 개인적인 사귐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으로 가득하시며 없이 고난 겪고 계시는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더군다나 주님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 더이상 하나님의 계명을 진지하게 당연한 의무로서 행하지 않고 사실상 완악하게 되는 , 주님을 버리며, 알면서도 죄와 사탄을 선택하는 , 이러한 멸망으로 치닫는 길이, 피조물의 행복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무엇을 뜻하는지 다니엘은 짐작합니다.

하물며 이미 하나님이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예수님을 골고다 십자가에 내어 주셨는데도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과 그의 계명을 무시할 , 오늘 주님이 갖게 되는 마음고통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늘과 땅에 있는 가족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3:15)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알고 있는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주께로 돌아오느냐 돌아오지 않느냐에 가슴이 들끓으십니다. 징벌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매우 힘든 일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고통당해야만 하는 우리를 보실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십니다. 주님은 징계하시는 중에도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 31:20) 외치십니다. 하나님은 자비로 가득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일어난 곤경일지라도, 가운데 있는 우리를 돕지 않으실 없습니다.

다만 하나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고난을 받을 , 자연 재해, 기아, 반란, 테러, 전쟁을 겪어나가야 이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항의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대신에, 그에 대항하여 격분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길을 우리 스스로 거절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이미 감격으로 체험할 있었듯이 하나님은 나는 그들을 위해 선을 행하는 것을 기뻐할 것이라 (32:41)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을 믿고 겸손하게 신뢰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 때에만 그렇게 행하십니다.

회개하는 죄인은 탕자처럼 아버지께로 달려옵니다. 다니엘은 자비로 가득하신 아버지의 마음에서 피난처를 발견했고, 주를 신뢰하는 눈길은, 주님의 자비가 심판을 이기리라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우리 시대를 위한 다니엘의 기도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며 간구합니다.

크시고 두려워할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계명을 거역하였고

주께서 보여 주신 바른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주의 ,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 백성에게 말한 것을

듣지 않았습니다.

주님, 주는 항상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이제 주께 지어진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우리는 오늘날 겪고 있는 그대로

모두 수치를 당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께 범죄 하였으니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주는

자비로우시고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를 거역하였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으며

주의 예언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주의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 민족이 주의 법을 어기며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가 주께 범죄 하였으므로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셨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버리고 주의 진리를 따름으로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목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범죄 하였습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였습니다.

주님, 그러나 주의 모든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우리 백성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우리 민족을 저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 하나님, 이제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눈을 떠서

처참히 황폐해 가는 우리의 상황과

복음으로 세워졌던 우리나라를 보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건국되고 부흥 하였으며

수많은 순교자의 피가 들어 있는 우리나라를 보옵소서.

우리가 앞에 엎드려 간구하는 것은

우리가 옳은 일을 행해서가 아니라

주의 긍휼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은혜를 베푸소서.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나라와 백성들은 주의 것입니다.

(9:3-19 참조; 현대인의 성경,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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